📚안녕, 피터팬 | 전경철 | 이야기장수(2026)

2026. 9. 16. 06:47교육,시대경영

교육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을 반나절 정도 만나는 교사들과, 24시간 매일의 나날들을 함께 지내야 하는 부모들의 삶의 무게는 현저히 다르다. 이 책은 그 매일의 나날들 속에 전쟁처럼 치열하게 사회와 싸워 낸, 자폐인 아버지로서의 생사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쩌면 이 책의 사례는 레인맨이나 템플그랜딘처럼 또 한 번의 자폐인들의 인식에 또 한 번 큰 획을 긋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1. 아빠의 날들

 

지금 누구든 제게 "귀하는 왜 회고록을 쓰려고 하는 게요? 아직 법정 노인도 아닌 젊은 양반이" 하고 물으면 즉시 답합니다. "악착같이 기록해서 한 명이라도 더 나를 기억하게 하려고요." 14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몫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말도 있죠. 둘 다 참 멋진 말입니다. 그런데, 앞의 말에서는 특권의식이 느껴지고 뒷말에서는 사적 욕심이 묻어납니다. 14

 

이번에 나 가고 나면 아들 혼자 살 곳 찾으러 전국의 장애인 거주시설을 찾아 헤매고 있잖아. 그러다 만난 그곳의 전문보호사라는 사람. 난색을 표하며 하는 말이 가관이야. 딱한 사정이라 조언 주는 건데, 자폐장애라는 말은 숨기고 상담하래. 정 부득이하면 발달에 다소 장애가 있다고만 하래. 지적장애 뒤에 숨으라는 거지. 행동매뉴얼? 천만에. 현실은 금지매뉴얼인 거지. 사람들이 이 지경이야. 유일 보호자인 자신이 떠나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왜 마지막 선택이 동반자살로 몰리는지 짐작이나 되니? 33

 

람들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싶어. 만 세 살 이전엔 아예 TV나 영상 시청 못 하게 해 줘. 특히 아이 혼자 보는 거. 요즘은 식당에서 폰 켜놓은 채, 부모는 편히 밥 먹고 아기는 혼자 유튜브 보고들 있던데, 그거 보면 참견하고 싶어 뒤지겠어. 43

 

생전장례식: 첫째, 갈 날 받아놓은 사람만이 초대 가능하다. 둘째, 엄근진 분위기로 육개장 한 그릇 먹고 조용히 시간 보내다 가는 게 아니라 웃고 떠들고 춤추는 잔치다. 셋째, 따라서 드레스코드도 천편일률의 거무칙칙 조문복이 아니라 알록달록 밝고 이쁜 옷을 입는다. 넷째, 아직 한국에서는 리얼 빈소에도 아예 안들 를 수는 없으니, 조의금은 그때 내라 하고, 대신 이날의 모든 비용은 예비 고인이자 상주 본인인 생전장례파티 초대자가 부담한다. 53

 

전국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은 천 개 이상이야. 그런데 아들이 갈 곳이 없어. 없어. 없다고. 단 한 곳도 없다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생모가 지금까지 전국 대부분의 거주시설과 연락했지만 지난 4개월간 찾지 못했어. 정말 극적인 순간에 딱 한 곳 겨우 찾았는데 몇 시간도 못 견디고 쫓겨났어. 교수가 '아무것도 안 하면 6개월'이라고 했던 시간이 지금도 똑딱똑딱 지나가고 있어. 85

 

그즈음 아들에게 새로운 행동이 시작됐어. 뭔가 스스로 답답함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가 되면 아빠 때리기. 처음에는 몇 번 제압해보려 했지만 이제 힘이 너무 세진 아들을 도저히 감당합 수가 없더라. 20년 넘게 아들을 전담해 온 의사도 그럴 때 힘으로 맞서면 오히려 역효과라며 절대 그러지 말래. 그냥 속절없이 맞아주는 게 전부였어. 너무너무 다행인 건 그 공격 행위를 유일하게 아빠한테만 한다는 거지. 98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의 마지막이라 는 수용 Acceptance. 직전 단계까지 겪었던 부정과 분노와 슬픔을 다 내려놓고, 자신과 주변과 사람을 정리하는 단계래. 모든 감정에서 자유로워졌기에 평온한 마음으로 그게 가능해진대. 110

 

우리나라 복지국가 맞아. 힘없고 병약한 노인들에게는 더욱. 주민센터 가봐. 민원실 절반만 행정 담당이고, 나머지 절반은 복지 담당이야. 복지 창구는 번호표도 안 뽑아. 136

 

내가 처음 입원을 하고 오니까, 주민센터에서 무려 세 명이나 날 보겠다고 집으로 찾아오더라. 오자마자 전담 간호사가 혈압, 혈당부터 재면서 꼬치꼬치 내 몸을 체크하더라고. 이어서 공무원들이 노인 대상 '긴급 돌봄 서비스'를 즉시 시작하겠다며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래. 별로 없다 그랬더니, '돌봄 도시락 배달' '병원 동행' '가사 지원' 다 된대. 136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사람들. 그건 영화에서나 나온다는 거지. 그곳 의사가 말하길, 일반인의 흔한 상상처럼 끔찍한 건 아니래. 하지만 결정적인 게, 내 아들 같은 경우 구속구 사용은 피할 수 없을 거라네. 알지? 그 옷처럼 생겨서 팔다리 묶는 거. 139

 

인간의 위대한 존엄을 마지막까지 모른 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한 맺히는 일인데, 그렇게 구속복 입고 호흡을 유지하며 사는 게 이미 뇌사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의미 없는 연명치료와 뭐가 달라. 난 내 존엄을 지켜야 하는 것 못지않게, 아들의 존엄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어. 140

 

'삶과 죽음의 경계란 거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곳엔 선도 그어져 있지 않았어. 그저 가볍게 걸어 넘으면 이쪽이 저쪽 되는 일이더라고. 207

 

'현재 이 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방법으로 아무리 노력해 본들 내 아들 잠자리 하나라도 찾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에 도착했습니다. 공부했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아들의 나 홀로 아빠가 됐을 때는 자폐의 '치료 교육' 공부였는데, 이번에는 자페의 '복지 지원' 공부였어요. 여기저기 물어봐도 말도 다 다르고, 하다못해 AI도 검색해서 말해주는 근거가 계속 틀리길래 이번에도 나흘로 고시 공부를 했죠. 212

 

'블루 Blue'라는 색이 있습니다. 먼저 떠오르는 건 희망 가득한 미래의 색이죠. 이때는 대부분 '맑은 하늘색 sky Blue'입니다. 자유와 해방의 색이죠. 밝은 미래의 계획을 청사진 Blueprint이라고 합니다. 삼성이나 인텔 같은 기업에서 신뢰와 성공을 상징하는 로고 색상으로 쓰고 있기도 하죠. 이때는 로열 블루 Deep Navy Royal Blue입니다. 한편으로 블루는 지독히 슬픈 색입니다. 흑인들의 블루스나 젊은 베르테르가 입었던 푸른색 코트에서 상실과 우울을 드러냈던 색이죠. 이럴 때는 미드나잇 블루 Midnight Blue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린 쪽빛의 하늘색으로 부르기도 하고, 심해의 고독을 드러내는 바다의 색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아주 짙은 블루입니다. 227

 

한 달 전, 제 아들이 반도의 품속 '이슬 푸른 마을'에 입주했습니다. 228

 

2. 아들의 날들

 

<레인 맨> <말아톤> 이전에 사람들은 자폐를 병은 커녕 장애 Disorder로 쳐주지도 않았어요. 우리나라에서 2000년대가 되기 전까지는 장애인 등록도 할 수 없었다니까요. 그저 '동네 바보형'이나 '머리에 꽃 꽃은 처녀' 정도로 취급받았죠. 수많은 자폐아 부모들에게 <레인 맨> <말아톤>은 참 고마운 영화랍니다. 247

 

제가 20여 년간 포기하지 못했던 꿈이 아들로부터 '아빠'라는 말을 들어보는 거였어요. 248

 

남성 자폐아는 청년이 될 때까지 두 번의 정밀 진단을 받게 됩니다. 한 번은 장애인 등록과 등급을 판정하기 위해. 또 한 번은 입영 시기가 다가올 즈음에, 군 입대 여부 등 등급 판정을 다시 하기 위해. 252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라는 게 있습니다. 부정 Denial, 분노 Anger, 협상 Bargaining, 우울 Depression, 수용 Acceptance을 차례차례 겪는다죠. 저는 아들의 자폐를 진단받은 후 이 과정을 '먼저' 겪었습니다. 대부분의 자폐아 부모처럼. 굳이 이름을 바꿔 붙이면 자식의 '자폐'를 받아들이는 부모의 5단계쯤 되려나요? '사실일 리 없어'에서 시작한 마음이, 결국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구나'로 된 순간부터는 숱한 선택에 놓이게 됩니다. 260

 

육아는 23시간 59분이 고통이고 1분의 행복이다. 하지만 그 1분의 행복이 너무 크기에 기꺼이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 270

 

아들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감정 기복이 왔을 때 폭식으로 이를 달래려 합니다. 제가 저지하면 제 온몸을 뜯고 때립니다. 유아 때부터 아들을 전담해서 진료, 처방해주고 있는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의 분석에 따르면 조증 과잉 상태라고 하더군요. 그럴 때면 절대 맞서려 하지 말고 피하라고 합니다. 어차피 맞설 수도 없습니다. 이제 저보다 힘이 세진 아들은 제가 더 이상 힘으로 제압하지 못합니다. 272

 

반복 교육은 인지가 불가능한 자폐아에게 행동을 심어주는 거의 유일한 교육법입니다. 의학에서는 이걸 반복을 거듭해 습관으로 만드는 '암묵기억' 만들기라고 하죠. 무의식 기억으로 의식적 기억을 대신하려는 겁니다. 280

 

수시로 장애인 지원정책을 챙기는 것도 장애인 부모의 중요한 공부고 일과입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거든요. 285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운영하는 '온 맘'이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정보의 양도 많지만, 필요한 정보가 잘 정리돼 있죠. 자폐아를 포함해서 중증장애인 부모나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분이라면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293

 

체험 입소에 필요한 첫 서류인 '건강진단서'를 어떻게 받을 수 있느냐가, 코앞의 현실로 닥쳐온 거죠. 건강진단서가 있어야 입장이 됩니다. 아들은 스물여섯 살이 되기까지 병원에서 건강진단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아예. 병원 입장부터 성공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304

 

그곳의 의사가 말하길 장애인을 힘으로 제압하는 건강검진은 이제 안 한답니다. 장애인 인권이 아주 중요한 시대라네요. 지금은 이전처럼 어떻게든 힘으로 해내던 혈액 채취, 안 한답니다.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장애인 인권" 중요하겠죠. 그런데 사람의 생존을 위한 인권이 우선인 게 당연하지 않나요? 긴박한 건강 관리나 시급히 살 곳 마련을 위해서라면 말이죠. 제 아들, 건강진단 못 하면 거주시설에 못 들어갑니다." 아빠의 원망이 하나 더 추가되는 순간입니다. 306

 

쿠키를 받아 든 간호과장님의 단호한 지시가 이어집니다. "이제, 부모 두 분은 없어지세요." "네?" 이미 낌새를 제대로 눈치챈 아들이 제게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을 다시 보면서 낮게 말합니다. "아드님 시야에서 사라지셔야 합니다. 절대 눈에 띄지 않게 계시다 제가 부르면 오세요" 부모의 존재는 오히려 장애물입니다. 311

 

대부분의 자폐아에게 큰 문제는 놀이문화의 부재입니다. 소통 거부를 넘어 낯선 것들에 대한 경계심 탓에 마땅히 놀거리가 없다는 거. 결국 본능적인 '먹기 놀이'에 집착하게 됩니다. 316

 

'이제 저걸 어쩌지?' '남겨진 것들'이 이렇게 잔뜩 한데, 아들과 함께 '사라진 것들'은 제가 습관처럼 26년간 혼자 해오던 일거리입니다. '그게 왜 그리 힘들었을까?' 334

 

"여기가 우리나라 표준의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이야. 입소 정원 45명, 5인 1실, 야간당직 선생 2명, 아들이 살 수 있냐의 열쇠는 '선생님들의 능력이 있는가? 의지도 있는가?'인데. 이곳은 두 가지가 다 있어." 불과 오늘 오전까지도, 제가 아이 엄마에게 다짐하듯 한 말입니다. "이곳에서도 만약 포기한다면 '우리 아들이 갈 곳은 이 나라에 없다'가 돼. 내 예지력이 결국 맞아가고 있잖아. 어차피 쉬운 일 아니었어. 그러니 이리 오래 걸렸지. 하지만 이제 내일모레면 한 달이야. 그곳이 해냈고 장한 우리 아들도 해냈어." 345

 

한 건물 45명이라는 중증장애인 숙박 정원에 비해 2명이라는 당직 선생 수가 마음에 걸리긴 합니다. 교사 한 명당 22.5명의 중증장애인 숙박을 보살펴야 하니까요. 그나마 2명인 이유도 입소 생활자가 여자. 남자가 함께 있기에 교사도 성별 담당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단 한 명인 곳도 허다합니다. 이게 이 나라 표준입니다. 간판에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이라고 적힌 곳들의 표준. 350

 

부모의 희생과 노력을 존중하지 않는 전문가는 만나지 마십시오. 비굴하게 섬기면서 희망고문당하지 마십시오. 363

 

브런치라는 곳. 승인된 작가 수가 무려 10만여 명이고, 하루에만 최소 1천 개 이상의 글이 올라오지만, 관심의 눈길 한 번 받지 못하고 그림자 되어 묻혀가는 글이 80%가 넘는다는 걸. 빈부 격차 제대로인 엄청난 브런치 자본주의. 376

 

바로 다음날 아침, 기숙사라면 사감쯤 돼 보이는 선생님이 일찌감치 전화를 걸어와 그러시더군요. "아시다시피 아드님의 '도전행동'이 우려돼서 함께하기는 힘들겠네요." 그놈의 '도전행동'. 이 단어 말이죠. 자폐 치료교육 현장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복지 지원 분야에서는 늘 단골맨트죠. 주로 시설 관제자나 운영자들이 애용하는. '도전행동 때문에 단체생활 어려움'. 그러니 입소 불가'. 흑은 '퇴소 처분'. 누구를 위한 단어랍니까? 누구를 배려하는 거죠? 누구의 시선이죠? 401

 

자폐는 아직 불치입니다. 그러나 그 불치라는 선고가 우리 아이들의 삶이 불행해야 한다는 선고는 아닙니다. 로렌조의 부모가 오일 한 병으로 운명에 저항했듯, 우리는 네버랜드를 만들어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간의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자폐는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조건'입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입니다. 431

 

아직은 자폐가 불치이기 때문에, 더욱더 사회적 시스템이 절실합니다. 병원에서 고칠 수 없는 영역이라면, 사회가 그 삶을 오롯이 품어내야 합니다. 432

 

기록된 사랑은 길을 만듭니다. 이 기록이 훗날 많은 이들에게 이정표가 된다면, 승리의 기적이 가까워질 것입니다. 432

 

"다시는 이 땅에, 피터팬이라는 이유로 세상 밖으로 내몰리는 아이가 없어야 한다. 더는 길이 보이지 않아, 자식과 자신을 포기하는 부모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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