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언어들 | 김기석 | 복있는사람(2025)

2025. 12. 15. 08:30책속진주(영혼,마음경영)

 

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문법에 익숙해지는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익숙해지는 순간, 그 단어들은 낯섦을 잃은 채 상투어가 되곤 한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발화되는 말들. 그 말들은 더 이상 사건을 일으키지 못한다. 8

 

세상에는 할 수 없는 일도 있고, 해서는 안 될 일도 있다. 그것을 분별하는 것이 지혜다. 9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의 여백은 점점 줄어드는 세상이다.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을 누리지는 못한다. 행복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행복을 저해한다. 10

 

1. 허무의 심연을 들여다보다

 

1) 물음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의 방문객 13

 

전도서는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삶을 가르치는 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16

 

잠언이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바늘 잠’箴과 ‘말씀 언’言이 결합된 말로 ‘찌르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잠언은 굳어진 우리 마음의 지각을 찔러 일상 너머의 질서를 보게 만듭니다. 18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 1:3). 삶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 이 구절은 참 짓궂게 들립니다. 22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함으로써, 그는 삶의 행복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삶을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24

 

바다도 몇천 년을 그렇게 지워지고 있을 것이다 앞 물결을 뒷 물결이 싸악 지워내고 또다시 뒷 물결이 앞 물결을 싸악 지워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바다는 언제나 싱싱하게 싱싱하게 다시 채워지고 있을 것이다 지워지는 것은 이토록 아름답다 분명하게 지울 줄 아는 사람만이 가장 분명하게 다시 태어난다.-정진규의 시 26

 

2) 지혜

 

젊을 때부터 전도서의 세계관과 친밀해지면 집착할 필요 없는 것에 매달려 전전긍긍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28

 

새로움은 아픔과 동시에 발생합니다. 아픔이 없다면 새로움은 발생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새롭게 이해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던 낡은 생각의 틀이 무너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친숙했던 틀이 무너질 때 우리는 아픔을 느낍니다. 28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과정이 인생이지만, 우리의 일상은 순환적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시대의 홍수 사건 이후에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않겠다고 하신 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 8:22)고 말씀하십니다. 30

 

도스토옙스키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조시마 장로의 입을 통해 이러한 이율배반적 현실을 드러냅니다. 나는 인류를 사랑한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인류를 사랑하면 할수록 개별적 인간, 다시 말해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공상을 할 때는 흔히 인류에 대한 지극한 봉사 정신에 빠져들기도 하고, 만일 갑자기 그럴 필요가 생긴다면 사람들을 위해 실제로 십자가를 걸머지겠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단 이틀도 같은 방에서 어떤사람하고든 함께 지낼 수 없으며, 이것은 내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바다.32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역사 속에 돌입한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있지만, 아직 그 나라가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사이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32

 

모든 만물이 피곤한 까닭은 끊임없는 변화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좋은 것이지만 우리 의식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때 우리 영혼은 영속적인 것을 그리워합니다. 32

 

인간 속에는 누구에게나 결핍이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도 우리 속에 있는 결핍 때문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자기 속에 결핍을 품고 사는 인간을 가리켜 에로스Eros라고 말합니다. 흔히 에로스 하면 주로 성적인 사랑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사실 에로스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항상 타자를 지향하는 존재의 이름입니다. 살다 보면 행복감을 느낄 때가 있고, 불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에로스적 존재인 인간은 늘 만족을 지향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기본 조건입니다. 34

 

3) 쾌락

 

보람과 의미는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을 때, 누군가의 요구에 응답했을 때, 다시 말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누군가를 돕거나 그의 요구에 응답할 때 보람을 느끼고 의미를 찾게 됩니다. 인간의 인간됨은 그렇게 형성되는 것입니다. 46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가상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지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고 지금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행복을 미래의 성취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카프카의 『성』에 나오는 측량기사 K의 처지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성은 다가서는 만큼 멀어집니다. 47

 

우리는 “행복하려면 이러이러한 것이 반드시 필요해”라고 말하며 그것을 붙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합니다. 하지만 그 행복감은 휘발성이 강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퇴색되고 맙니다. 내 것이라 여기던 것들이 속절없이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면 얻을 때의 기쁨보다 더 큰 상실감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코헬렛이 스스로 노력해서 세상의 낙을 누려 본 결과, 그것이 우리 삶에 영속적인 기쁨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이 아니더라는 것이지요. 48 우리 주위를 보면 술로 고통스러운 인생을 잊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술은 여러 가지 폐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잠 20: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사 5:11-12). 코헬렛은 술로 육신을 즐겁게 하려는 것도 허망한 열정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51

 

우리 삶을 조금만 돌아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즉각 얻을 수 있을 때 사람들은 그게 귀한 줄도 모르고 고마운 줄도 모릅니다.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연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바라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때 삶은 권태로워집니다. 지연된 욕망을 견디지 못하는 성급함은 행복의 능력 또한 앗아가게 마련입니다. 54

 

기복적인 종교도 결국은 상의 교육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끝없이 복을 받기 위한 조건들을 가르치니 말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마땅히 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가족이므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시민이기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믿는 사람이기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입니다. 55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1). 그가 추구했던 즐거움과 삶의 낙은 지속성이 없으며,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알갱이처럼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임을 그는 자각합니다. 56

 

4) 유한

 

제러미 리프킨에게서 배운 ‘행복 공식’이 있습니다. H=C/D. 여기서 H는 행복을 뜻하는 ‘Happiness’, D는 욕망을 뜻하는 ‘Desire’, C는 자본을 뜻하는 ‘Capital’의 약자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행복값을 크게 하려면 분자인 C가 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를 크게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지내다 보면 숨이 가빠지게 마련이고, 타자들을 환대할 여백은 우리 속에서 점점 좁아집니다. 행복값을 크게 하는 길은 분자인 C를 키우는 것밖에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분모 D(욕망)를 줄이면 됩니다. 61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들이 오히려 가진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옛사람은 “욕망을 눌러 스스로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을 면하고, 멈추어야 할 때 멈출 줄 알면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는다”知足不辱 知止不殆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은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고 말합니다. 감사하는 마음과 자족은 소비사회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입니다. 62 인간의 인간됨은 ‘돌이켜 봄’에 있습니다. 자기의 삶을 돌아보는 것을 가리켜 반성이라 합니다. 늘 자기를 성찰하는 일이 몸에 밴 사람도 있지만, 어지간해서는 자기의 마음과 행위를 돌아보지 않는 게 사람입니다. 63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을 보이는 대로만 보지 않고 다층적으로 살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우리를 속일 때가 많습니다. 우매자 혹은 어리석은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합니다. 66

 

요즘 장례는 깔끔합니다. 죽음의 자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병원이나 시설입니다. 가족 가운데 어린 세대들은 죽음을 가까이서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장례식의 모든 절차는 대개 상조회사가 진행합니다. 음식도 업체가 준비해 줍니다. 죽음을 처리하기 위해 유일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돈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죽음을 멀리 내쫓습니다. 죽음을 대면할 기회가 없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인류학적인 낭비가 아닐까요? 죽음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그 과정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상실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느 때부터인지 죽음은 처리해야 할 문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68

 

삶은 미로 찾기와 같아서 중심에 다가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주변으로 밀려나고, 주변으로 밀려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중심으로의 길이 열립니다. 72

 

5)목적

 

“노동의 신성함을 알지 못하는 자녀에게 많은 유산을 물려주는 것은 마치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들게 함과 같다. - 존웨슬리. 78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보았으랴”(전 2:25). 이것은 단순한 자랑이 아닙니다. 먹고 즐기는 일조차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누릴 수 있음을 깨달은 이의 감탄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삶의 모든 순간이 은총의 순간입니다. 그것을 볼 눈이 없을 뿐입니다. 85

 

2. 영원의 그림자 아래서

 

6)시간

 

인간관계의 파탄은 나의 기대와 그 기대를 저버리는 타자 사이의 불일치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심껏 누군가의 요구에 응하되 자기의 선행을 잊는 게 좋습니다. 88

 

인간의 시간은 수평으로 혹은 일직선으로 흘러가는 법이 없습니다. 파동을 치며 갑니다. 그러므로 높낮이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시간도 영구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98

 

고집쟁이 농사꾼’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전우익 선생의 글을 읽다가 “참 삶이란 부단히 버리는 것과 든든히 붙잡는 것의 통일”이라는 구절과 만났습니다. 단순하지만 깊은 통찰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100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보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을 때 생기는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101

 

7) 영원

 

목표 지점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은 자기가 지나온 길가에 있는 기적들을 보지 못합니다.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꽃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그늘가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 이들에게 수인사를 건네지도 않습니다. 이런 태도로 삶을 사는 이들이 제법 많습니다. 저는 그것이야말로 삶의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110

 

8) 존재

 

낯섦이야말로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우리의 의식은 낯선 세계와의 대면을 통해 확장됩니다. 119

 

법의 생명은 공정함입니다. 예컨대 빵이 세 개밖에 없는데 사람이 다섯 명이면 누구나 분배 방식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119

 

역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전개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조바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22

 

삶의 의미는 찾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과제입니다. 125

 

알 수 없음을 알 수 없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127

 

다른 이가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한다 하여 한탄할 것 없습니다. 쓸데없는 비교는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 뿐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향유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 16:5-6). 이 마음이면 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지금의 삶을 은총으로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128

 

9)관계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 오늘을 한껏 향유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130

 

벼랑 끝에 선 듯 삶이 위태로운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야말로 부름받은 이들의 직무입니다. 믿음생활이란 서러움 곁으로 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곁에 다가가 설 땅이 되어 주고, 기댈 언덕이 되어 주는 것은 거룩한 일입니다. 134

 

돌아보면 역사의 변화는 늘 계란으로 바위 치는 무모한 이들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문제의 크기에 압도되어 선한 사람들이 침묵할 때, 악은 더욱 기세등등하게 우리 삶을 유린합니다. 135

 

물질의 인색보다 더 심각한 것은 마음의 인색입니다. 남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마음이 그것입니다. 시기심의 해독제는 남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입니다. 137

 

행복은 무언가를 더해가는 삶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삶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요? ‘더’의 길이 아니라 ‘덜’의 길로 인생 항로를 바꿀 때 불안이 우리를 집어삼키지 못합니다. 139

 

10)경외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땀 흘려 일을 해도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운 것은 내가 게을러서도, 머리가 나빠서도 아니다. 힘 있는 이들이 내 몫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148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과 만나면 쉽게 피곤해집니다. 그들은 자기의 식견을 과시적으로 드러내 보이려 합니다. 늘 가르치려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말을 많이 하는 이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153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말을 삼갈 줄 압니다.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155

 

11)향유

 

높은 자리에 앉은 이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정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음 놓고 자기 산업을 일구며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158

 

사랑해야 할 것과 이용해야 할 것이 뒤바뀌는 것을 가리켜 ‘타락’이라 합니다. 물건이나 재화는 사랑하고, 정작 사랑해야 할 사람은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전도된 삶이 아니겠습니까? 159

 

현대인들은 두 가지 병에 시달립니다. 첫째는 남과 같아지지 않으면 못 견디는 병입니다. 남이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하면 스스로 비참하다고 여깁니다. 현대인의 또 다른 병은 남과 구별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실제적인 필요에 따라 소비하기보다는 기호를 소비하는 데 집중합니다. 161

 

지켜야 할 것이 많을수록 번민도 많습니다. 지켜야 할 것이 없는 사람은 몸도 마음도 가볍습니다. 우리 삶이 복잡해진 것은 지켜야 할 것이 많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62

 

교회가 사용할 수 있는 돈이 많을 때 오히려 복음적 자유로부터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가능성이 많아질 때 하나님의 가능성이 닫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163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얻은 수입의 태반을 선한 일에 사용한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바 있습니다. 그는 배우지 못한 이들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 학교를 설립하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성적과 무관하게 장학금을 지속적으로 지급하고, 선한 일을 하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후원했습니다. 163

 

김장하 선생의 돈 철학이 담긴 문장이 있습니다. “똥은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 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164

 

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일평생을 어두운 데서 먹으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전 5:16-17). 어두운 데서 먹는다는 말은 주어진 인생을 충만하게 살아내지 못하고, 내 인생에 시간의 향기가 배어들 틈도 없이 허겁지겁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언가를 손에 쥐려 안달하고 서둘러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를 쓰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울분과 고생과 분노뿐입니다. 166

 

우리가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가능성을 기꺼워하며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겨 감사함으로 누리는 것은 우리를 욕망의 수레바퀴 밑으로 밀어 대는 세상에 대한 강력한 저항입니다. 167

 

오늘 우리에게 허락된 것들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일 때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한 곳으로 인식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과 노고 또한 하나님이 맡기신 일로 여길 때 우리 마음에 빛이 스며듭니다. 168

 

3. 지혜의 미로를 헤메다

 

12)결핍

 

승승장구했으나 누릴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그는 목표를 향해 치달리는 일에 익숙할 뿐 삶을 축제로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입니다. 남들과 경쟁하는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정작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의 소중함을 알지 못합니다. 176

 

놓아야 할 것을 놓아야 삶이 깨끗해집니다. 내려놓는 연습을 젊을 때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힘이 없을 때 내려놓으려고 하면 비애가 느껴집니다. ‘내가 힘이 없어서 이것을 내려놔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179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완전히 채워져야 행복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비어 있는 상태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결핍을 자기 삶의 일부로 수용할 때, 비로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181

 

절망이라 여기던 시간이 희망으로 통하는 문이 되기도 하고, 성공이라 여기던 삶의 경험이 오히려 우리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182

 

13)성찰

 

숲속에서 자라는 나무는 자기에게 허락된 삶의 자리가 척박하다 하여 원망하지 않습니다. 자기 속에 깃든 생명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를 조절할 뿐입니다. 투덜거리는 것은 오직 사람뿐인 것 같습니다. 190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기본적인 정서는 불안입니다. 불안에 잠식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 속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불확실함을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용기를 냅니다. 191

 

누군가의 찬사를 들으면서 자아를 부풀리는 사람보다는 꾸지람을 감사하게 받아들여 자기를 성찰하는 사람이 더 복이 있습니다.195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전 7:8). 시작은 장대하게 하지만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완성되지 못한 채 오랜 세월 방치된 건축물들은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자아냅니다. 일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가 더 중요합니다. 196

 

14)곤경

 

삶에 충실하지 못할 때 죽음은 공포로 다가옵니다. 죽음을 소멸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순리를 따라 삶을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죽음은 완성입니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99

 

지성은 배워서 획득하는 것이지만 영성은 우리가 누리고 사는 모든 것이 주어진 것임을 깨닫는 것-이어령. 201 영성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의 성취를 뽐내지 않습니다. 자기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내가 했어”,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것은 아직 영성의 문에 들어서지 못한 이들의 말입니다. 201

 

작은 일이라도 서로 축하하며 사는 게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누적될 때, 고단한 시간이 다가와도 거기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6

 

곤경은 우리 삶에 균열을 일으키기에 힘든 현실임이 분명하지만, 그런 곤경을 마주하고 넘어서는 가운데 성숙해지기도 합니다. 207

 

극단으로 치우칠 때 일어나는 문제가 제법 많습니다. 과식도 문제이고, 지나친 다이어트도 문제입니다. 옛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할 때 극단이 요청되기도 합니다. 혁명적 상황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극단은 일시적이어야 합니다. 극단의 지속은 파괴적이기 때문입니다. 210

 

극단은 불안정한 자리입니다. 굳어진 것은 죽음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유연함을 잃는 순간 사람도 조직도 사회도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211

 

하나님은 극단을 미워하십니다. 그 자리에는 여백이 없기 때문입니다. 타자를 위한 여백을 마련하지 못할 때 우리 영혼은 시들기 시작합니다. 211

 

치우치지 않고 사는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합니다. 하나를 취하기 위해 다른 것을 버리지 않습니다. 211

 

15) 상실

 

오늘의 나는 흠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내일의 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은 모두 오류 가능성 속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218

 

고쳐 주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신뢰 관계를 형성할 때 맨 처음 명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고쳐 주려는 마음의 바탕에는 자기가 상대보다 낫다는 무의식적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불쾌하게 여깁니다. 그의 말이 옳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정과 존중과 신뢰가 형성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218

 

일으켜 세우는 말이 있는가 하면 무너뜨리는 말이 있으며, 연결하는 말이 있는가 하면 단절하는 말이 있습니다. 언어를 다루는 이들이 늘 자기를 잘 살펴야 하는 것은 언어가 가진 그런 효능 때문입니다. 219

 

공교롭게도 소셜 미디어를 뜻하는 SNS를 한글 자판으로 치면 ‘눈’이 됩니다. 그 눈은 따뜻할 수도 있고 싸늘할 수도 있습니다. 그 눈들이 우리 삶을 규정할 때, 내적 자유는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219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다 보면 자기답게 살 수 없습니다. 다른 이들이 설정한 기준에 따라 연기하며 살게 됩니다. 219

 

16) 분별

 

지혜자는 앞뒤 분별함 없이 자기 생각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립니다. 237

 

이정하 시인은 「바람 속을 걷는 법」이라는 시에서, 바람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라 말합니다.8 그것이 바로 존재의 용기입니다. 237

 

4. 부조리의 바다에서 섭리를 찾다

 

17) 명암

 

사람들에게 흰 백지 위에 점 하나를 찍어 놓고 무엇이 보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점에 시선을 빼앗겨 비어 있는 공간은 보지 못합니다. 그 빈 공간이 훨씬 큰데도 말입니다. 250

 

18) 섭리

 

미래는 누구에게나 불확실합니다. 불확실함을 공포로 느끼는 이들은 무언가 확실한 것을 붙잡으려 합니다. 미래에 내 삶을 든든하게 보장해 줄 것을 추구하느라 지금이라는 시간을 충실히 살아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라 여겼던 그것도 실은 안개와 같아서 한순간 스러져 버리곤 합니다. 돈도 명예도 권세도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258

 

과거는 기억을 통해서 현재에 영향을 끼칩니다. 부정적인 기억은 우리 삶을 구속하여 창조적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합니다. 긍정적인 기억은 오늘의 곤고함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258

 

하루를 살아도 한껏 살게 하여 주십시오. 한순간을 즐겨도 한껏 즐기게 하여 주십시오. 고난은 평화에 이르는 길임을 받아들이게 하여 주십시오.죄로 가득 찬 이 세상, 주님께서 그대로 끌어안으셨듯이저도 이 세상을 제 뜻대로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있는 그대로 끌어안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하나님의 뜻에 항복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만사를 다 올바로 이룩하실 것을 믿게 하여 주십시오.그리하여, 제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소박素朴한 행복幸福을 누리고, 지극至極한 행복은 영원한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259 지금 생명의 그물망 위에서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사는 것이야말로 허무의 수렁에 빠져들지 않는 길입니다. 해답이 없는 삶이라 하여 우울해하지 말고, 오늘 온기와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을 기꺼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267

 

19) 역설

 

자기 삶의 루틴을 세워야 삶이 단단해집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어떤 일을 지속할 때, 마치 근육이 생기는 것처럼 우리 속에 어떤 힘이 축적됩니다. 269

 

다른 사람들이 다 나보다 앞서간 것 같지만 내 몫은 남아 있는 법입니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린 사람보다 삶의 속도를 늦춘 이들이 더 옹골차게 수확하기도 합니다. 274

 

태어나서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사는 봄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기를 키워가는 여름날, 다양한 생의 열매를 거두는 가을날, 그리고 밖으로 향했던 눈길을 거두어들이며 삶을 응시해야 하는 겨울날이 있습니다. 때에 맞는 인생을 사는 것이 지혜로움입니다. 하지만 때를 분별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275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부분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사람입니다. 전체를 보면서도 부분의 소중함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280

 

20) 차이

 

사람이 어리석어지는 것은 정보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를 지키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정 욕구에 시달리는 사람일수록 어리석음에 빠지기 쉽습니다. 284

 

선택의 기로에서 좋은 선택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일상의 자잘한 선택도 누적되면 우리 인생의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마음을 옳은 일 쪽으로 기울일 때 삶이 아름다워집니다. 288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잠 14:4). 잠언의 교훈입니다. 풍랑이 무섭다고 하여 배를 띄우지 않으면, 안전할지는 모르겠지만 가야 할 곳에 갈 수 없습니다. 모험을 해야 합니다. 불확실성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늘 조심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292

 

인간의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편리한 삶이라는 선물을 주었지만, 지금 우리는 지구가 보내온 지불 청구서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습니다. 생태계 파괴가 심각합니다. 부리던 뱀에게 물린 격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더욱 겸허하게 구해야 할 때입니다. 293

 

21) 방향

 

전도서에서 자주 언급되는 ‘헛되다’는 말은 인생의 공허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인생을 무겁게 하는 집착을 경계하는 말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놓아야 할 것을 놓지 못하니 부자유하게 되고, 오히려 그것에 붙들린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294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신 것처럼, 사람 또한 말로 자기가 살아갈 세상을 짓습니다. 칭찬과 격려, 북돋는 말은 상대방의 가슴에 따뜻한 울림을 만들어내고, 그 칭찬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이끕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말은 상대방에게 감정적 상처를 주게 마련입니다. 296

 

우매한 자들은 굉장히 분주하지만 정작 가야 할 곳을 알지 못하고 가는 사람들이고, 지혜로운 사람은 분주하지 않은 듯 보이나 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가는 사람입니다. 인생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방향성입니다. 302

 

5. 경외의 빛으로 삶을 비추다

22) 실천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집니다. 나무는 쓰러지면 그 자리에 머물며 미생물들의 해체 작업에 고스란히 몸을 맡깁니다. 그것이 바로 잘 돌아감입니다.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멈추고 담담하게 자기 삶을 받아들일 때 삶의 비애는 줄어듭니다. 담담함이야말로 아름다움의 바탕입니다. 314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그래,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바람이 약해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이정하. 바람 속을 걷는 법> 315

 

23) 기억

 

젊음의 특색은 ‘불온함’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이나 관행에 도전하고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 세대가 만들어 놓은 가치관에 길들여진 채 살고 있는 젊음을 목격하는 것은 매우 슬프고 쓸쓸한 일입니다. 326

 

24) 본분

 

한 평생 살고 보니 천만금이 다 필요한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행복한 삶이란 봄날에 피어나는 꽃을 보고 기꺼워하고 뺨을 스치는 바람을 즐길 줄 아는 것이더라. 내 후손들이 사는 세상은 호수 위에서 유람선이 선유하는 것처럼 평화롭기를 바란다. 340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전 1:8). 일상이 기적이고 선물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340

 

기록하는 것은 기억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과 나누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342

 

명령을 지키는 삶은 누군가의 필요나 요구에 응답하는 삶입니다.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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