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3. 10:06ㆍ책속진주(시,에세이)
작가 김영하는 소설가다. 소설을 손 놓은 지 한참 된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작가일 정도로 그는 유명하다.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같이 읽기 도서'로 추천되어 읽게 된 책은 바로 김영하작가의 에세이였다.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삶을 잘 살아가야 되는 이유를 책 속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인생은 일회용으로 주어진다. 그처럼 귀중한 것이 단 하나만 주어진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쾌는 쉽게 처리하기 어렵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했을 것이다. 9
소설이나 게임이 제공하는 매력적인 대안적 삶들에도 불구하고 진짜 인생이 일회용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10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은 더욱 희미해지고 상상과 뒤섞일 것이다. 무엇이, 누가 실제로 어떻게 존재했는가는 모호해질 것이다. 기억에도 반감기가 있다면 그것은 언제일까. 22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환대보다 적대를, 다정함보다 공격성을 더 오래 마음에 두고 기억한다. 어떤 환대는 무뚝뚝하고, 어떤 적대는 상냥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게 환대였는지 적대였는지 누구나 알게 된다. 29
부모에 의해 창조되었고 부모의 통제하에 있었다는 점에서 나와 로봇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32
어떤 식으로 살든 인간은 다 익숙해진다. 나는 지인과 '야로'에 의존하는 엄마 방식보다 좀 어렵더라도 혼자 밀고 나가는 내 방식이 이제는 더 익숙하다. 익숙할 뿐 아니라 이게 더 현명하다고까지 생각한다. 38
지인이 개입된 일은 냉정하게 거절하기도 어려워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여야 할 때도 많다. 39
의료계에 VIP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이 증후군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니 의사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 특히 본인의 가족을 수술해야 할 때 의사들이 긴장하고 부담감을 느껴 도리어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내는 현상을 말한다. 부담감도 부담감이지만 환자가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꼭 해야 할 검사를 누락하기도 한다고 한다. 39
첫 책을 냈을 때 아버지에게도 사인을 해서 한 권을 보냈다. 며칠 후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책을 다 읽었는데 몇 군데 오자가 있더라며 하나하나 불러주었다. 일부는 오자가 맞았지만 대부분은 아니었다. 고맙다고는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첫 책을 낸 아들이 듣고 싶어 할 말이 고작 오자 지적일 리가 없지 않은가. 살아생전 아버지가 바란 것과 내가 바란 것은 언제나 달랐고, 우리는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도 이어졌다. 50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와 닮았다. 기대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면 실망이 한 발 뒤로 물러나고 실망이 오른쪽으로 돌면 기대도 함께 돈다. 기대의 동작이 크면 실망의 동작도 커지고 기대의 스텝이 작으면 실망의 스텝도 작다. 61
인간은 보통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십 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72
'사람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흔히들 하지만 사람은 평생 많이 변한다. 노력으로 달라지기도 하고 환경에 적응하기도 한다. 생물학적 수준에서는 인간의 몸이란 테세우스의 배와 마찬가지다. 세포들이 끊임없이 죽고 다시 생성되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세포는 거의 없을 것이다. 행동도, 마음도, 습관도, 조금씩 달라지다가 그 변화가 누적되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되어버린다. 76
어린 시절의 일기에는 '나'에 대한 말들로 가득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일까를 알기 위해 애썼던 십 대의 내가 거기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라는 존재가 저지른 일, 풍기는 냄새, 보이는 모습은 타인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102
스스로 부과하는 고통은 성장과 변화의 동력이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든 백두대간 종주를 하든, 매일같이 크로스핏 운동을 하든, 끝이 있고 잘 통제되기만 한다면 더 강한 존재로 변화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107
"만성적 고통이 견딜 수 없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사회가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만성적 고통은 의미를 상실한 우리 사회를, 우리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시대를 반영한다"라고 진단한다. - 한병철 115
대체로 젊을 때는 확실한 게 거의 없어서 힘들고, 늙어서는 확실한 것밖에 없어서 괴롭다. 확실한 게 거의 없는데도 젊은이는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는 채로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만 한다. 무한대에 가까운 가능성이 오히려 판단을 어렵게 하는데 이렇게 내려진 결정들이 모여 확실성만 남아 있는, 더는 아무것도 바꿀 게 없는 미래가 된다. 청춘의 불안은 여기에서 비롯된다.137
그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다. 미래는 불확실의 영역이다 오직 죽음만이 확실한 미래다. 이런 불확실성은 당연히 불안을 야기한다. 불안이 극에 달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고 너무 없다면 위험할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한 불안을 감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140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도 아니다. 살아남은 자는 그냥 살아남은 자이고, 그 이유와 방법도 어쩌면 자신만 알거나 아니면 자기도 모를 것이다. 151
지금은 너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오직 단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는 '오징어 게임', 서바이벌 게임의 세계관이 스크린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은밀히 믿고 있다. 액정화면 밖 진짜 세상은 다르다고. 거기에는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152
인생의 성패를 판단하는 곡선은 하나가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속적 성공과 도덕적 파탄이 함께올 수 있으며 사랑과 꿈이 엇갈릴 수 있다. 어쩌면 한두 개의 선으로 나타낼 수 없을 수도 있다. 160
사람의 좋은 성질은 처음에 우러날까 아니면 최후에 우러날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물의 참된 성격은 오직 시련을 통해서만 드러난다고 믿었고 그 믿음에 따라 그리스 비극을 만들었다. 그들이 믿었던 것처럼, 상황이 좋을 때.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이다. 상황이 나쁠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문제다. 모든 이야기는 거기에 집중한다. 172
사람의 참된 모습을 보려면 충분한 시간과 적절한 계기가 필요하다. 그러니 첫인상은 전부가 아니며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최선과 최악이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셀카가 남이 찍은 사진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가장 괜찮게 보이는 각도로 찍기 때문이라고 한다. 173
지금 이 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것과 스스로 결정한 것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칵테일이며 내가 바로 이 인상 칵테일의 제조자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삶을 잘 완성할 책임이 있다.187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미래에 나쁜 결과와 마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갈망은 그 어떤 전략적 고려보다 우선하고, 살지 않은 삶에 대한 고찰은 그런 의미를 만들어내거나 찾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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