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청소하러 왔습니다 | 양단우 | 디디북스(2024)

2026. 1. 9. 08:25책속진주(시,에세이)

이 책도 우연히 작은 북카페에서 만났다. 독립서점 형태로 팝업스토어를 작게 운영하는 집이라 그런지 책들은 우리가 흔히 밖에서 만날 수 있는 화려한 책들이 아니었다. 소박하다 못해 투박스러운 책들이었다. 그 속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책 한 권이 있었으니 어느 젊은 청소부의 에세이였다.

1. 그 나이 먹도록 뭐했냐
2.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는 걸까
3. 버티는 게 답일까
4. 직장에서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 때
5. 사표 써도 괜찮아?
6.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데
7. 상사가 진상이라면
8.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라고

 

"나이대에 맞는 남들 보기에 버젓한 일"을 갖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삶을 마주하는 나"가 중요하다는 것을 또다시 느낀다. 그 태도 때문에 청소를 하든, 다른 직업을 갖든, 나라는 불변의 존재가 절대 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p. 29

 

청소일은 육체노동이기 때문에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사내정치에 휘말리지 않아도 되었고, 오로지 내가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잘살고 있는지 고민할 여유 없이 청소에 몰입해야 했기에, 취업을 준비할 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p. 32

 

집은 언제나 가난하고 구질구질했다. 나는 머리에 이상만 가득 찼지, 현실을 볼 줄은 몰랐다. 모텔청소부였던 엄마는 그런 나에게 "지랄한다."라고 했다. 적성 어쩌고 지랄할 시간에 공장에 취업해서 돈이나 벌어오라고 했다. 엄마는 밤새 객실청소를 하며, 때로는 중간에 일하다 튀거나 휴무를 잡아버린 사람들 때문에 24시간이 넘게 일하기도 했다. 엄마의 쉰내 나는 옷을 보면서 나는 쉰내나게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쉰내나는 인생 따위. 이후 그 쉰내가 조금 익숙할 때쯤, 머릿속의 생각으로만 적성을 찾는 것을 그만둔 것 같다. 통장이 텅장이 되고, 당장 오늘 저녁에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상황에서 적성을 따지다간, 사망하는 게 적성에 꼭 맞겠다 싶었다. 내 적성은 혼자서,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것이었지만 재능도 노력도 평타치인 사람에겐 신기루 같은 낭만과 환상일 뿐이었다. p. 39

 

아무리 꿈이 화려해도 삶은, 바코드를 찍고 시급을 받는 게 훨씬 더 가치 있으니까. 그래서 이번 생은 망했어. p. 40

 

쓰러지기 직전까지 현기증이 나거나 건망증이 심해지는 질병의 원인이 결국 우울증이었다니. 웃음과 긍정으로 가려진 진짜의 나는 그러했나 보다. p. 77

 

어디를 가든 사람 문제는 피할 수 없구나. 심지어 혼자 일한다고 할지라도 갑을은 존재하기 마련이니. p. 140

 

충격적인가? 하지만 충격을 받기엔 이르다. 혼자 사는 여성들의 집을 청소할 땐, 남성의 집보다 더한 공포감을 가지고 입실한다. 바닥에 세면대에, 싱크대에 기다란 머리카락들이 먼지만큼이나 쌓여있는 건 그나마 비위가 덜한 지경이다. 화장실을 열었을 때 사용한 생리대를 타일 벽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걸 보노라면! 사모님이 생리대 수집가인가 아니면 행위예술가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떤 사모님은 급하게 외출하셔서 깜빡하셨는지 모르겠는데, 팬티에 사용 한 생리대를 그대로 붙이고 그 자리에 벗어놓고 나가버린다. 얼마나 급했으면 다리 두 쪽이 나간 게 상상될 정도로 허물 벗듯이 벗어두고 갔을까. 얼마나 바쁘기에 자신의 속옷과 위생용품을 정리하지 않을까. 얼마나 바빴으면 청소하러 온 타인을 배려할 틈도 없었을까. 바쁜 사모님들 덕분에 내 포용력이 날로 넓어지는 것만 같다. p. 142

 

종래에는 깨달았다. 진상은 내 인생 어디쯤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아마도 죽을 때까지 진상들의 속박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 나는 그 속에서 제자리만 빙빙 맴도는 참새 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p. 149

 

이쯤 되니까 취업하는 행위가 그냥 누군가에게 팔려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내 오장육부를 갈라서 등급을 매긴 뒤 정육점에 전시해 놓은 다음, 사람들이 먹음직스러운 부위를 골라 계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환멸이 나버렸다. 나란 사람의 가치는 수많은 면접과 이력서 광탈 속에서 평가절하되고, 이상한 회사들만 들어갔다 나오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나이만 먹어갔다. p. 163

 

망설이지 말고 부딪히자. 팔릴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되지 말고. 자신의 가치를 이 세상 속에 마음껏 뽐내보자. 우리 인생의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p. 170

 

아무리 청소부가 온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 관리는 해야지. 돈 주니까 부려먹는 식으로 가 아니라. 그런 사람의 태도와 마음이 청소하는 사람에게도 전해지는 거야. 그리고 집안 상태를 보면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살아가는지 기본적인 태도도 보이지. p.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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