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해도 괜찮아 | 배리 프리전트 | 예문아카이브(2023)

2025. 2. 28. 17:34책속진주(교육,시대경영)

난 역시 아날로그 방식의 종이책이 좋긴 하다. 이 책은 우연히 인스타 알고리즘에 의해 발견되어 전자책으로 읽게 된 책인데 확실히 집중도는 종이책에 줄을 긋고 읽어야 제 맛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필자가 갖고 있던 교육관과 많이 흡사해 있어 공감 가며 읽었다. 나 또한 저경력 교사였을 때는 자폐아이들을 비롯한 장애를 지닌 아이들의 행동 중 충동적이거나 공격적이거나 상동적일 때는 문제행동으로 바라보고 개선하는 데만 집중을 했었던 듯하다. 하지만 연륜도 늘어나고 경험도 쌓여나가다 보니 한 명 한 명의 강점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기본적으로 모두가 특별하고 자신만의 달란트가 있다고 믿게 되면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360도 바뀌는 계기가 되었었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관점에서 자폐친구들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세워야 할 목표는 아이를 고쳐서 ‘정상’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을 키워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8)

 

발달이 느린 것 말고도 자폐 아이의 행동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아이, 통증에 둔감한 아이, 까치발로 다니는 아이, 이유 없이 혼자 깔깔대는 아이, 눈 맞춤을 피하고 혼자 노는 아이,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아이, 물건을 빙빙 돌리는 아이, 손을 펄럭이는 아이, 모든 물건을 일렬로 늘어놓는 아이, 잠을 자지 않거나 자주 깨는 아이 …….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고, 그래서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려 줄 사람 하나 없는 세상. 바로 그것이 자폐라는 세상입니다.(16)

 

자폐 범주성 장애는 이제 가장 흔히 진단되는 발달 장애 가운데 하나다. 미국 질병 통제 센터에서는 취학 아동 50명 중 한 명꼴로 자폐 아동의 수를 추산하고 있다.(20)

 

자폐아동을 위한 가라테 수업과 연극 프로그램, 스포츠 캠프, 종교 학교, 요가 수업도 있다. 한편 이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도 없으면서 전문 자격증까지 갖춘 사기꾼이나 기회주의자들이 자기들이 최고라고 광고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안타깝게도 자폐증 치료는 통제가 힘들 만큼 거대한 사업체가 되었다.(21)

 

이 책을 통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이제 우리는 이유가 있어서 하는 정당한 행동들을 병적인 증상으로 규정하지 않고, 힘겹고 놀라운 일이 가득한 세상에 자기 나름대로 대처하고 적응하고 소통하려는 전략의 일부로 볼 것이다. 자폐증을 치료할 때 일부 전문가들은 특정 행동을 줄이거나 ‘근절’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곤 한다. 하지만 나는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의 능력을 키우고,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고, 위기 극복 전략을 다지게 하고, 걱정이 있을 때 나오던 행동 대신 바람직하게 행동하도록 돕는 것이 왜 더 좋은지 보여줄 것이다.(25)

 

1. "왜?"라고 먼저 생각하기

 

자폐증은 보통 이런 행동 중심적 접근, 다시 말해서 아이가 가진 결점들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아이가 문제라고 여겨지는 특성을 보이고 또 그런 행동들을 하면 사람들은 그 아이를 자폐아라고 부른다. 즉, 주변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힘들어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문제가 있고,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하거나(반향어) 자꾸 몸을 흔들거나 팔을 펄럭거리거나 제자리를 빙빙 도는 것처럼 관심을 두는 분야와 행동이 제한되어 있으면 자폐아로 분류하는 것이다.(36)

 

정서 조절 장애(emotional dysregulation)를 겪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사람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을 때 학습 효과가 높고 주변 사람들과도 잘 어울린다. 또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에 집중하며 잘 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38)

 

이렇게 정서적, 생리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자폐증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점이다.(38)

 

아이가 두 팔을 퍼덕거리거나 몸을 흔들거나 춤을 추는 것 같은 행동을 할 때 ‘자폐증’ 때문에 그렇다고 일축해 버리기는 쉽다. 하지만 자폐증이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그들을 돕는 전문가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마치 탐정처럼 구할 수 있는 단서는 모조리 찾아 조사하고 깊이 생각해서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41)

 

“자폐성 행동”으로 인식되는 행위 중 실제로 문제가 되는 행위는 별로 없다. 아이러니하지만 중요한 사실이다. 그런 행동들은 모두 자신의 정서 상태를 조절하기 위해 쓰는 전략들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일 때가 많다는 뜻이다.(42)

 

1943년 처음으로 자폐증을 진단한 미국의 정신과 의사 레오 카너(Leo Kanner)는 자신이 연구한 아이들이 독특한 특성을 보인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그것을 “같은 상태를 지속하려는 고집”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자폐증의 전형적인 특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자폐증이 있는 많은 아이들이 같은 것을 추구하면서 자기 주변을 통제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병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라 하나의 극복 전략이다.(44)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 중 하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 않고 늘 혼자 있으려 한다는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특정한 사람이 눈에 보이고 가까이 있어야 안정을 유지하는 아이들이 많다.(47)

 

아이가 이렇게 계속 묻는 것은 불안함을 드러내는 신호이면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 불확실함과 불안한 마음을 줄이려는 전략적 행동이기도 하다.(49)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은 정해진 일정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유난히 못 견디고 힘들어한다.(54)

 

2. 자폐아 언어 알아듣기

 

심리 언어학과 언어 병리학을 공부할 때도 반향어는 ‘무의미한 흉내 내기’가 아니라 훨씬 복잡한 것이며 목적이 있는 표현이라고 했다.(69)

 

가족이 중심이 되어 접근하는 방식이야말로 자폐증을 극복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76)

 

사실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에게 반향어는 매우 중요하게 쓰인다. 그 과정을 통해 언어를 습득하기 때문이다. (77)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듣고 말하는 것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보다 시각적인 방법으로 언어를 표현하고 이해하려는 성향이 강하다.(79)

 

반향어의 기능을 인지하고 그 의도를 이해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가 좀 더 창의적인 언어를 쓰고 좀 더 평범한 방법으로 자기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돕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79)

 

반향어는 언어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 사실 기억하고 있는 단어나 구를 반복하는 것만으로 언어를 창의적이고 효과적으로 쓴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반향어는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런 아이들은 반향어를 시작으로, 몸을 악기처럼 사용해 소리를 내서 자신이 보고, 느끼고,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닫는다. 또 그렇게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81)

 

3. 그들의 능력을 강점으로 키우기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은 다양한 것들에 열정을 쏟는다. 고층 건물, 각종 동물들, 지리, 독특한 장르의 음악, 해가 뜨고 지는 시간, 고속도로 출구 등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끝없이 몰두하거나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든다.(87)

 

일부 부모와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몰입하는 것을 또 다른 자폐성 행동으로 보고, 특히 더 고치기 어려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러지 못하게 말리고,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평범한 것들에 관심을 갖게 하려고 든다. 하지만 아이들의 이런 열정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자폐증이 있는 아이가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쓰는 전략을 붕괴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 심하게 말하면 아이의 흥미를 자극하고 즐거움을 주는 유일한 근원을 없애는 것일 수도 있다. 이보다는 아이의 열정을 이용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88)

 

에디는 돈을 쓰거나 갑자기 바뀌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그저 한 선생님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아이의 열정을 장점으로 인식한 결과였다. 케이트는 에디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에 초점을 두면서 그런 아이의 관심을 이용해 학습에 대한 강한 의욕을 북돋아 주었다. 즉 아이의 열정을 장애로 생각하지 않고 가능성의 원천으로 본 것이다.(90)  

 

아이가 뭔가에 빠져 있을 때 우리가 동참해 주면 그 열정을 바탕으로 신뢰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99)

 

아이가 대화를 시작할 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얘기만 하는 것은 그래야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일 수 있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은 일정한 체계가 없고 상대방이 할 말을 유추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불안하거나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그래서 대화 내용을 자신이 잘 아는 것으로 제한함으로써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확보하려고 한다.(107)

 

4.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두려움 극복하기

 

자폐성 범주에 속해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장 큰 문제로 믿지 못하는 점을 꼽는다. 그들은 신경학적인 원인 때문에 세 가지의 큰 어려움을 겪는다. 첫째, 바로 자기 몸을 믿는 것, 둘째,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믿는 것, 셋째, 가장 힘든, 다른 사람을 믿는 것.(113)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은 아무 경고도 없이 극에서 극으로 돌변할 수 있고, 감정 상태가 심하게 불안할 때는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자신의 좌절과 혼란스러움을 드러낸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믿음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119)

 

염소 중에서 ‘기절하는 염소’라는 품종이 있다. 이 염소는 선천성 근육긴장증(myotonia congenita)이 있어서 흥분하거나 위협을 느끼면 다리 근육이 뻣뻣하게 굳는다. 그래서 꼼짝 못하고 있다가 한쪽으로 쓰러진다.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충격을 받거나, 불안하거나, 겁이 나면 이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갑자기 멈춰 버린다. 그리고 눈을 감고 귀를 막아 세상으로부터 단절되고 싶어 할 때도 있다.(126)

 

기차, 공룡, 자동차 등 자신이 집착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들의 통제 방식 중 하나다(3장 ‘그들의 능력을 강점으로 키우기’ 참고). 다른 사람이 할 말이나 물어볼 내용을 예측하기 힘들면, 아이는 그 상황을 불편해하고 불안해한다.(127)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이 식단 때문에 곤란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이런 통제감 때문이다. ,이런 기호는 감각적인 문제와 관련된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어떤 음식의 질감이나 뜨겁고 차가운 정도, 냄새, 맛이 싫으면 먹지 않으려고 한다. 음식과 요리 방법, 먹는 형식 등을 직접 고르는 것은 자신이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하면서 자신이 속한 세상이 안전하고 믿을 수 있다고 느낀다.(131)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이란 혼란스럽고, 예측이 불가능하고, 자신을 무척 힘들게 하는 곳이다. 이들이 세상을 견디는 데 가장 힘이 되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인간관계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134)

 

자폐증이 있는 내 소중한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그들이 바뀌도록 요구하거나 부담을 주지 말고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바뀌면 그들도 바뀐다.(135)

 

5. 정서적 극복 기억하기

 

어떤 사람이나 장소, 활동에 대해 좋은 기억이 있으면 자꾸 떠올리게 되지만 괴롭고 좋지 못한 기억은 피하고 싶어 지며, 생각만으로 불쾌해질 수 있다.(141)

 

PTSD와 부정적인 기억은 다르지만 공통된 부분도 있다. PTSD는 기억 때문에 늘 고통스러워하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때 내려지는 진단이다.(150)

 

자폐증이 있는 사람이 부정적인 기억을 극복하도록 도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겪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주고 그가 느꼈을 고통을 인정한 다음, 불안한 정서 상태를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와 선생님들은 나쁜 뜻에서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반대로 행동할 때가 많다. 문제를 못 본 척하며 조용히 지나가 주길 바라는 것이다. 또 “이런, 너무 걱정하지 마” 같은 말들만 늘어놓으며 아이의 고통을 줄여서 생각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니며 아이를 존중하는 모습도 아니다. 당연히 아이가 감정을 조절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도 없다.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아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도와준다는 생각 대신 묵살당한 기분이 들어 훨씬 더 불안해한다.(152)

 

학교에 근무하는 치료사들은 치료를 받지 않으려 하고 지나치게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 그럴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대개 공간적 요소다. 전에 다른 치료사와 같은 장소, 같은 책상에 앉아 치료를 받을 때 도움을 받기보다는 스트레스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치료 시간이 되면 “싫어! 싫어! 싫어!”라며 거부하고 바닥에 엎드려 버린다. 해결 방법은 역시 긍정적인 기억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우선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두 개를 놓고 고르게 하자. 그리고 오 분에서 십 분 정도 그냥 재미있게 놀자.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주면서 그 시간과 장소를 좋아하게 만들면 같은 곳에 대해 훨씬 좋은 느낌을 갖게 할 수 있다. 아이를 즐겁게 해 준 다음 천천히, 조금씩 어려운 것에 도전하게 하자. 어린아이들을 위한 아주 간단한 방법도 있다. ‘공부’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너무도 많은 치료사들과 선생님들이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이제 공부할 시간이야” “놀이는 그만. 이제 공부해야 해”라는 말들을 한다. 때로는 아이가 그 시간을 얼마나 힘들어할지 염려하는 마음이 우리가 하는 말에 드러나기도 한다. 이렇게 ‘공부’라는 말이나 우리의 말투는 부정적인 기억들을 촉발할 수 있으므로, 걱정이 담긴 말 대신 좀 더 긍정적이고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어떨까?(156)

 

6. 그들만의 특별한 소통법 이해하기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든 지나치게 걱정하는 사람이든 삶이 힘들어지는 이유는 같다. 원래 인간은 직관을 따르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자폐증이 있으면 그런 직관이 발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60)

 

우리가 언어를 배우는 유기적인 방법을 생각해 보라. 엄마가 아기를 앉혀 놓고 문장의 구성 요소나 동사 활용 같은 것을 가르치는 것 봤는가? 사람은 언어에 노출되고 그 속에 스며들면서 말을 배운다. 또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관찰하면서 언어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을 정립한다. 언어 발달에서 쓰는 전문 용어로, 우리는 언어에 담긴 규칙을 ‘유추’하면서 단어의 의미를 익히고, 그 단어들로 복잡한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사회적인 규칙들도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담긴 미묘한 신호들을 ‘유추’한다.(160)

 

7. 아이에게 꼭 필요한 사람되기

 

진단을 내릴 때 전문가들이 하는 가장 흔한 잘못 중 하나는 병명을 분류해 알리기만 할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무책임하고 무신경한 행동이다. 전문가라면 아이가 가진 상대적인 장점, 특히 아이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는 점들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부모도 진단은 시작일 뿐, 앞으로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213)

 

아이의 진단명을 들은 부모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장기적인 예후다. 답은 이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아이 모습이 어떻게 되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시간을 거치며 아이가 보이게 될 성장 궤도다. 다시 말하면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아이가 가진 잠재력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아이에게 제때 올바른 도움을 주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의무다. 올바른 사람을 선택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필요 이상으로 겁을 주는 전문가들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에 한계는 없다. 자폐증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에게 발달은 평생 계속되는 과정이다.(213)

 

새로 전학 온 학생이 있으면 교사와 치료사들은 아이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파악한다. 그러다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의 모습을 단정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아이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215)

 

아이를 도와주는 어른 중에는 되도록 아이와 얼굴을 가까이 대는 것이 정서 발달에 효과적이며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은 쉽게 불안해하고 감각적인 문제도 갖고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하면 무서워하고 겁을 먹는다. 오히려 상태가 더 나빠지기도 한다.(216)

 

8. 긍정적인 경험담에서 지혜 배우기

 

사실 부모들 중에는 더 나은 자격을 갖추고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생각에 기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아이를 키워 본 부모나 어른들이 다 같이 하는 말이 있다. 그런 전문가들이 자폐증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지는 몰라도, 아이에 대해서만큼은 부모가 전문가라는 것이다.(221)

 

아이에게 자폐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부모는 거의 모두 알 수 없는 기분에 빠져든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은 죄의식, 분노, 불안, 억울함 등 과거에는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강렬한 감정도 불러일으킨다.(232)

 

자폐증이 있는 아이를 키우려면 꼭 필요한 지원과 서비스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끊임없이 아이의 대변인 역할을 해야 한다. (233)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언제나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234)

 

“우리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학교 직원이든 전문가든 친척이든, 우리가 바라는 것은 부모로서 우리를 존중해 주고 우리의 아이들도 존중해 달라는 것뿐이에요.”-어느 자폐 부모의 말(239)

 

9. 진정한 자폐증 전문가들에게 배우기

 

천재적인 동물학자이자 자폐인인 템플 그랜딘은 1986년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첫 책 《어느 자폐인 이야기》를 출간함으로써 자폐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242)

 

자폐증이 있는 청소년이나 성인은 자신이 가진 장애 자체보다, 살면서 겪은 경험들에 더욱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254)

 

사람들은 보통 자폐증 때문에 그들이 힘들어하거나 실패를 겪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절한 도움만 받는다면 그들도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면서 성공한 삶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자폐증이라는 장애가 있든 없든, 사람은 성장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요.”(255)

 

10. 자폐증 안에서 성장하는 법 배우기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도 평범한 다른 사람들처럼 각각의 발달 단계를 거치며 성장한다는 것이다. (260)

 

“아이가 통제력을 잃으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강하게 나가라고 했던 사람들, 모두 틀렸어요. 그들 모두가 틀렸다고요. 앤디는 상처를 받고 있었어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었죠. 아이가 흥분한 것도 다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앤디가 열두 살 되던 해에 부모는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266)

 

자폐증은 확실했다. 그러나 적절한 도움을 받고 기대를 높게 가지면 아이는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282)

 

“부모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들이 잘 돌봐 줄 거야.’ 그 정도로는 안 됩니다. 부모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가 실현되고 있는 현장에 같이 있어야 해요.”(284)

 

“돈이 문제가 안 되고, 집이나 직장을 어디로든 옮길 수 있다면 어디에 사는 것이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을까요?” 이런 부모들은 자폐증을 치유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어딘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즉, 아이가 자폐증 때문에 겪는 모든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줄 학교나 의사, 치료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고 묻는다. 그런 곳은 없다. 이것이 답이다. 가족들이 아무 걱정 없이 자신들의 삶을 살 수 있게, 아이를 ‘정상’으로 만들어 줄 완벽한 해답이나 계획을 제시하는 전문가, 병원, 치료법은 없다.(288)

 

11. 아이 마음에 생기 불어넣기

 

작은 성과라도 계속 쌓이면 큰 변화가 생겨서 자폐증이 있는 사람은 물론 그 가족들의 삶까지 향상되는 경우가 많다.(290)

 

부모는 자기가 잘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며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고비는 많은데 분명한 해결책은 없고 선택할 수 있는 범위도 없다. 어떤 전문가는 일주일에 마흔 시간씩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우긴다. 어떤 부모는 자기 아이가 놀라운 효과를 봤다며 이런저런 치료를 받아 보라고 계속 권한다. 누구는 통합 교육이 좋다고 하고 누구는 자폐증을 전문으로 하는 사립학교가 좋다고 한다. 글루텐 프리 식단(gluten-free diet, 글루텐이 함유된 식품을 제한한 식단)은 필수라고 한다. 부모는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단 한 번만 잘못된 선택을 해도(혹은 선택을 하지 못했을 때도)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까 봐 노심초사한다. (292)

 

부모가 특정한 목표에 지나치게 집중하며 모든 것을 그 관점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에 아이가 가진 강점들과 다른 쪽에서 보이는 성장, 심지어 아이 자체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럴 때는 틀을 다시 짜야 한다. (293)

 

부모는 아이가 말을 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그런 희망적인 징표들을 못 보고 넘어갈 때가 많다.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냉장고 앞으로 끌고 가는 것은 ‘사람을 도구로 이용’하려는 속셈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가 의도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려는 행위이며 소통의 시작점이다. 사람들은 한 번에 큰 도약을 꿈꾸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작은 걸음들이 성장의 바탕이 되고 희망을 갖게 해 줄 때가 많다.(294)

 

인간의 발달은 평생 동안 이루어지는 과정이며 우선순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때는 무척이나 중요하게 느껴졌던 것이 몇 년 뒤에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294)

 

최상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능력과 자질들을 갖춰야 할까?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자기 표현력과 자존감을 갖출 것, 행복감을 느낄 것, 긍정적인 경험을 할 것, 건전한 인간관계를 맺을 것 등이다. 덧붙여 자신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도 매우 중요하다.(295)

 

아이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행복감을 느낄 때 학습 효과가 크다. 사람은 긍정적인 기분을 느낄 때 정보를 훨씬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고 보유하게 된다. 끊임없는 스트레스 속에서 배운 것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필요할 때 제대로 활용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긍정적인 기분을 느낄 때는 적극적으로 배울 자세가 갖춰지기 때문에 훨씬 효과적이고 깊이 있는 학습이 이루어진다.(296)

 

부모 마음대로 기대를 정해 놓고 강요하는 대신, 가능하면 언제든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세워야 할 목표는 아이를 고쳐서 ‘정상’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을 키워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298)

 

12. 자폐증에 대한 오해 풀기

 

나라에 상관없이 부모는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고, 교육자들은 답을 알고 싶어 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정보를 원한다.(301)

 

진단명은 아이의 능력을 미리 결정짓는 부당한 행위다. 사람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존재다. 그리고 발달은 여러 차원에서 복합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런 이분법적인 표현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302)

 

최근 개정된 DSM(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은 자폐 범주성 장애의 하위 범주들을 모두 없애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진단명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302)

 

어릴 때는 상태가 심각해 보여서 더 많은 도움이 필요했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놀랄 만큼 좋아진 경우는 많다. 아이에 따라 늦게 트이는 아이들이 있고, 발달은 평생에 걸쳐 진행된다. 모호하고 정확하지도 않은 진단명에는 신경 쓰지 말자. 대신 아이가 가진 장점과 문제들에 집중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찾자.(303)

 

인간의 발달에 결정적인 시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릴 때 언어를 접하지 않으면 나중에 배우기가 훨씬 힘든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그 밖의 부분에서 발달은 평생에 걸쳐 진행되며, 자폐증이 있는 사람은 물론 우리 모두도 평생 동안 능력을 키우고 기술을 익힌다. 나는 잘 짜인 포괄적인 중재 프로그램을 일찍 시작할 것을 강력히 권한다.(304)

 

연구를 보면 어린아이들의 경우 사회적 상호작용과 학습에 집중된 활동들을 일주일에 스물다섯 시간 정도 활발히 하게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그 시간에는 전문가들이 제시한 치료 방법뿐 아니라 날마다 하는 일상적인 일들, 또 양치질이나 팝콘 만들기 같은 단순한 일들을 해도 된다. 그 시간 외 일대일 치료 시간을 추가로 늘리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304)

 

자폐증은 범주성 장애라고 한다. 사람들마다 나타나는 증상이나 능력이 달라서, 자폐증이라고 해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몸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느릿느릿 움직이며 멍해 보이는 아이도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각성 편향(arousal bias)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날마다 여러 상태의 생리적 각성을 겪는다.(305)

 

사람은 누구든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자폐증이 있는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너무 ‘낮은 편향’이나 너무 ‘높은 편향’으로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즉 각성이 덜 되거나 너무 심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해야 할 일이나 환경은 조용한 상태를 요구하는데 아이는 흥분해 있다. 반면 상황은 적극적인 태도를 요하는데 아이는 졸려하거나 멍한 상태다. 더 복잡한 문제는, 이런 편향이 몇 시간 만에 급변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각성 상태를 오가는 것을 힘들어한다. 즉 운동장에서는 높은 각성 상태로 잘 놀다가도 수업 시간이 되면 조용하고 기민한 상태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각 활동에 적합한 상태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최대화하도록 돕는 것이다.(305)

 

가장 좋은 접근법은 아이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를 바꿔서 가장 효과적이고 많은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다.(306)

 

내 경험상, 부모와 교사들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필요한 도움을 주면서 아이를 세상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이다. 물론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다 그렇다. 아이들은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을 할 때 가장 크게 발전하며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로 발휘한다.(306)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들을 보고 같이 참여하면서, 정식 수업을 받는 것처럼 많은 것을 배운다. 아이의 능력에서 너무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친구들이 쓰는 언어와 사회적인 활동들은 수준이 높을수록 좋다.(314)

 

어떤 경우든 결정적인 요인은 선생님 한 사람이 아니라 학교의 리더십이다. 통합 프로그램과 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중시하는 교장 선생님은 교사와 학생을 돕기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선생님이 자폐증이 있는 학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면, 교사는 좋든 싫든 팀의 일원이며 학생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그러면서 학교 차원에서 필요한 교육을 받게 하고 여러 가지 지원을 제공하면서 그런 선생님을 도와야 한다.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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