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진주(영혼,마음경영)

📚언어의 온도 | 이기주 | 말글터

watergarden1 2023. 8. 13. 12:42

말과 글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다고 합니다. 세상살이에 지칠 때 어떤 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어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책 한 권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는 문장 속에서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엿듣고 기록하는 일을 즐겨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일상에서 발견한 의미 있는 말과 글, 단어의 어원과 유래, 그런 언어가 지닌 소중함과 절실함을 담아낸 책입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적당히 뜨거운 음식을 먹듯 찬찬히 곱씹다 보면, 각자의 '언어의 온도'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1. 말, 마음에 새기는 것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저마다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공간에선 언어가 꽤 밀도있게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말기 암 환자가 돌봄을 받는 호스피스 병동에선 말 한마디의 값어치와 무게가 어마어마하다. 우리가 절박한 상황에서 눈과 귀로 받아들이는 언어는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크로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마음 깊숙이 퍼져 나가기 마련이니까(21).

병원에서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의술이 될 수도 있어요(22).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25).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다언이 실언으로 가는 지름길이다(30). 

처음에 너를 알고 싶어 시작되지만 결국 '나'를 알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게 사랑인지도 모른다(43).

음식을 맛보며 과거를 떠올린다는 건, 그 음식 자체가 그리운 게 아니라 함께 먹었던 사람과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운 맛은, 그리운 기억을 호출한다(44).

위로의 표현은 잘 익은 언어를 적정한 온도로 전달할 때 효능을 발휘한다(69).

상대에 대한 '앎'이 빠져있는 위로는 되레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찬찬히 느낀 다음, 슬픔을 달래 줄 따뜻한 말을 조금 느린 박자로 꺼내도 늦지 않을 거라고 본다(70).

"타이어의 마모 상태에 따라 고객의 운전습관이나 성향을 미루어 짐작하곤 해요. 자동차의 발에 해당하는 타이어를 참 피곤하게 만드는 피곤한 운전자가 많아요. 운전에 3급이라는 게 있어요. 급출발, 급가속, 급정지인데요. 이걸 밥 먹듯이 하는 운전자들은 성격이 삐딱하고 과격한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이 끌고 온 차량을 살펴보면 아니나 다를까 타이어 상태가 엉망이라니까요". 사람 성격은 아주 사소한 데서 드러나는 법이다(75). 

"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고 여행길에 오릅니다. 예를 들어, 인도 여행을 할 때 갠지스 강에 대한 지식을 사전에 공부하고 가는 게 도움이 될까요? 그 반대일 수도 있을 겁니다. 때론 백지상태에서 아기의 눈으로 바라보세요. 그래야 본질이 보입니다(78)."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분주함에도 갈래가 있는 듯하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방법을 찾기 위해 분주한 경우가 있고 핑계를 찾다 보니 분주한 때도 있다. 오늘 하루, 난 어떤 색깔의 분주함 때문에 "바쁘다"는 말을 쏟아냈을까(88).

정말 좋은 질문은,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게 한다. 그리고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발판인지 모른다(98). 

삶의 진보는, 대개 사소한 질문에서 비롯된다(98). 

달력을 뜻하는 영어 단어 'calendar'의 어원은 라틴어 칼렌다리움(calendarium)이다. '회계장부' '빚 독촉' 정도의 의미가 있다(99).

2. 글, 지지 않는 꽃

'사람'에서 슬며시 받침을 바꾸면 '사랑'이 되고, '사람'에서 은밀하게 모음을 빼면 '삶'이 된다. 사람이 사랑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삶이 아닐까?(121)

화려하게 만개한 순간보다 적당히 반쯤 피었을 때가 훨씬 더 아름다운 경우가 있다. 절정보다 더 아름다운 건 절정으로 치닫는 과정인지도 모른다(136).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일은 고치는 행위의 연속일 뿐이다. 좀 더 가치 있는 단어와 문장을 찾아낼 때까지 펜을 들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지루하고 평범한 일에 익숙할 때, 반복과의 싸움을 견딜 때 글은 깊어지고 단단해진다(140).

'프로'는 '선언하는 고백'이라는 뜻의 라틴어 프로페시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들 앞에서 "난 전문가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할 수 있어야, 그리고 그에 따른 실력과 책임감을 겸비해야 비로소 프로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프로"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하기 싫은 일도 끝까지 해내는 경향이 있다. 이와 달리 '아마추어'는 라틴어 아마토르에서 유래한 말로 '좋아하는 사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취미 삼아 소일거리로 임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마추어는 어떤 일이나 과정에서 재미와 즐거움 같은 요소가 사라지면 더 하지 않는다. 아마추어의 입장에선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프로와 아마추어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인지도 모른다(158).

우린 무언가를 정면으로 마주할 때 오히려 그 가치를 알아채지 못하곤 한다. 글쓰기가 그렇고 사랑이 그렇고 일도 그렇다. 때로는 조금 떨어져서 바라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한 발 뒤로 물러나, 조금은 다른 각도로... 소중한 것일수록(205).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유종의 미는 중요하다. 모든 사귐은 하나의 여정이다. 마지막 순간이 두 사람의 추억을 지배한다(208). 

3. 행, 살아있다는 증거

여행을 앞두고 짐을 챙길 때 중요한 건 '챙기기'가 아니라 '버리기'가 아닐까 싶다. 어떤 물건을 가방에 담느냐보다 무엇을 두고 가느냐가 여행의 성패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243).

우리는 어떤 일에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무언가 시도하지 않았거나 스스로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더 깊은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259). 

인생을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선 기억력이 중요하지만 사랑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망각력이 필요하다고(262). 

여보게, '부드러움'에는 '강함'에 없는 것이 있다네. 그건 다름 아닌 생명일세. 생명과 가까운 게 부드러움이고 죽음과 가까운 게 딱딱함일세. 살아있는 것들은 죄다 부드러운 법이지(276).

'봄비는 일비, 여름비는 잠비'라는 말이 있다. 봄에 비가 오면 들에 나가서 할 일이 많으므로 '일비', 여름에 비가 오면 낮잠을 자기 좋아서 '잠비'라는 것(286). 

향기로운 꽃 내음은 바람에 실려 백 리까지 퍼져나간다. 그래서 '화향백리'라 한다.  마찬가지로 깊이 있는 사람은 묵직한 향기를 남긴다. 사람 향기는 그리움과 같아서 만 리를 가도고 남는다. 그래서 '인향만리'라 부른다(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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