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 | 이재철 | 홍성사(2001)
우리 교회에서 고전독서모임을 이 책으로 하길래 중고서점까지 구해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아주 오래된 책이지만 지금의 청년들과 나의 청년의 때를 돌아보며 읽기에 아주 유익했다. 시대가 변해가도 변하지 않는 진리, 그 진리의 기준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1. 하나님의 플러스알파
그의 오늘은 그의 내일과 직결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내일과 연결되는 까닭에, 나는 청년들을 '현존하는 미래'라고 부르는 것이다. p. 9
청년이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 가족의 미래의 질이 결정된다. 이것을 아는 청년들이라면 청년 시절을 결코 의미 없이 소진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p. 11
자신에게 주어진 청년 시절을 책임과 최선을 다해 가꾼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첫째, 지금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청년 시절을 책임과 최선을 다해 가꾼다는 것은 분명한 목적과 목표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10대라면 아직 분명한 목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20대라면 분명한 삶의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셋째, 청년 시절을 책임과 최선을 다해 가꾼다는 것은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p. 12
바른 영혼이 바른 육체를 가능케 하고, 건강한 육체가 건강한 영혼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다. p. 16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노력을 아끼지 않되, 그 결과를 책임져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플러스 알파 속에서만 결실이 맺힌다. p. 18
2. 믿음이 시작하는 곳
일류 소설가, 일류 시인은 아는 것이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버릴 줄 알고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다. p. 30
일류 도공과 삼류 도공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는가? 삼류 도공은 자기가 만든 작품이 아까워서 만드는 대로 다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만드는 것은 모두 싸구려일 수밖에 없다. 반면에 일류 도공은 아무리 아까워도 완벽한 작품이 나올 때까지 수십 번, 수백 번이라도 깨어 버린다. 그렇게 해서 설령 그가 1년에 단 하나의 작품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이 땅에 오래도록 남게 되는 것이다. p. 30
3. 울더라도 뿌려야
기성 세대가 광란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젊은 세대를 믿어 주는 사회, 그 젊은이들도 기성세대처럼 똑같이 정직하고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 것을 믿어 주는 사회는 얼마나 아름다운 사회인가? p. 43
지금 청년들이 뿌려야 할 씨를 뿌리지 않으면, 20년 후에 그들 자신이 피해자가 되며, 그 자식들이 피해 자가 된다. 60년대와 70년대에는 이 땅의 청년들이 성장의 씨는 뿌렸으며 성실의 씨는 외면했기에, 모든 것이 부실해진 사회 속에서 바로 그들 자신과 그들의 자식들이 피해자가 된 것과 같은 이치다. p. 44
4. 크리스천과 문화
우리가 오늘날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하는 피아노나 오르간 그리고 오케스트라 연주 시 사용하는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등 그 어느 것도 성경 속의 악기는 아니다. 다 세속적인 악기이다. 그렇지만 그 악기가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될 때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악기가 된다. 기와집 형식으로 예배당을 지 읍면 은혜가 덜 되고, 가야금으로 연주하면 은혜가 반감된다는 생각이야말로 철저하게 비성경적이다. p. 53
무엇이든지 중심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기만 하면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한 아름다운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기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이 구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지 그 중심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쓰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 된다. p. 56
겉모습이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 하는 자의 중심이 중요하다. p. 56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기뻐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공이 무엇이든지 간에 진짜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p. 58
하나님은 두 라인의 사람을 쓰신다. 한 라인은 진짜 행동파 사람이다. 베드로, 엘리야, 엘리사가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 라인은 진짜 실력파들이다. 모세 오경을 기록한 모세, 다니엘서를 기록한 다니엘, 예언서를 기록한 예레미야나 에스겔, 신약을 삼분의 일이나 기록한 사도 바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의학을 전공한 의사였다. p. 58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두 라인의 사람을 쓰신다. 따라서 그대들은 선택해야 한다. 진짜 행동파가 되든지 아니면 진짜 실력파가 되든지 선택해야 한다. p. 58
5. 크리스천과 직업
"사람과의 갈등을 피해서 직장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과의 갈등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다. p. 61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들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결정 하든지 나에게 어떤 유익을 주느냐 하는 차원에서 떠나,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관점에서 생각하고 결정을 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고 결정하려면 대단히 혼란스럽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해답은 명쾌하게 나올 것이다."p. 62
영국의 유명한 평론가이자 역사학자였던 토마스 칼라일이 한 말이 있다. "만약 나의 직업이 나를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면, 내가 나의 직업을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자신이 자기 직업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면, 그 직업이 무엇이든 미련 없이 버리겠다는 의미이다. p. 65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 더 많은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직업이나 직장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모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거룩한 직업이요 직장이 된다.p. 66
무슨 일을 하든 무슨 직업을 갖든 자기의 유익이나 자기의 주머니만을 위해 일한다면, 그의 일터는 불의의 온상과 부정의 근원이 될 수밖에 없다. p. 66
6. 크리스천과 비전
비전이 없으면 사람이 방자해진다. 망상을 좇으면 패가망신한다. 야망의 노예가 되면 자신도 죽이고 남도 죽이게 된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이 망상과 비전을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p. 73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나의 비전을 이루려 한다면 그것은 100퍼센트 망상이요 야망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비전'이 아니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친히 이루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이다. p. 75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는 사람은 먼 곳에 시선을 두지만, 지금 자신 앞에 주어진 일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일이라는 것을 믿기에 매일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현실을 회피하고 무책임한 피안주의로 회피하려는 망상에 결코 빠지지 않는다. p. 75
자기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비전이 자신의 삶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에 의해 훈련된 사람으로 성숙해 간다. p. 75
80세에 부름을 받은 모세는 40년 동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모세는 출애굽에서부터 시작하여 요단강 언저리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다. 그런데 자신이 그토록 열망했던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모세는 정녕 헛수고한 실패자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정말 실패자였는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실패와 성공을 뛰어넘어 영원한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한 사람이 되었다. p. 78
우리를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이 이 땅에 펼쳐질 수 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통해 친히 이루기 원하시는 당신의 비전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p. 79
7. 크리스천과 신앙
참된 신앙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 속에 새겨야 할 세 가지 사항이 있다. 그것은 첫째,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이다. 둘째, 크리스천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참된 신앙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곳에 있든지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p. 82
사람이 죽을 땐 못다 이룬 업적이나 실적을 두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했던 일이나, 정직해야 할 때 정직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p. 90
8. 크리스천과 물질
<물질에 대한 바른 생각>
첫째, 모든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둘째,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물질은 반드시 생산적인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셋째, 돈으로 만사를 해결하려 하면 그 만사는 반드시 망치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물질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남게 된다는 사실이다. p. 99
9. 크리스천과 애국
세상 사람들은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을 애국애족의 마지막 종착역으로 삼는 데 반하여, 크리스천들은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을 애국 애족의 시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p. 104
10. 크리스천과 역사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사관은 헬레니즘 사관이 아닌 헤브라이즘 사관, 즉 신본주의 사관이어야 한다. 모든 역사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그 역사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사관이어야 하는 것이다. p. 113
이 세상을 한번 둘러보자. 불의를 따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가, 아니면 정의를 따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가? 말할 필요도 없이 불의를 따르는 사람들이 언제나 더 많다. 불의를 따르는 사람은 항상 다수고, 정의를 따르는 사람은 늘 소수다. 그럼에도 늘 소수가 속한 정의가 승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역사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p. 115
11. 크리스천과 고난
옥토라 부르는 땅은, 땅의 입장에서 보면 말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과 아픔을 겪은 땅이다. 곡괭이로 찍을 때마다, 호미로 파헤칠 때마다, 쟁기로 갈아엎을 때마다, 그 땅은 찢기고 으스러지고 가루가 되는 고난과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고난의 결과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수반하는 옥토가 된 것이다. 주님께서 귀담아들으라고 하신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고난을 외면한 길가, 돌밭, 가시떨기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있을 뿐이다. 결실과는 전혀 무관한 채로 말이다. 오직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던 땅만이 결실을 맺는 좋은 땅이 된다. p. 124
삶의 현장에서 크고 작은 고난을 경험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인격적으로 신뢰하면서 더 깊은 신앙으로 나아가게 된다. p. 126
헬렌 켈러가 절망에 빠진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아픔과 고통과 고난을 먼저 겪었던 설리번 선생이 그녀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p. 131
12. 크리스천과 부활
청년들이여, 지금 그대를 스쳐 지나가고 있는 현재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그대의 일생이 된다. 아무런 의미 없이 영원히 죽어지는 인생이 될 것인가, 아니면 부활의 주님 안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인생이 될 것인가? 그대가 지혜로운 자라면, 무엇이 바른 해답인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p. 143
13. 크리스천과 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한다는 것, 다시 말해 하나님께 삶의 최우선 순위를 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한다.p. 145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세상의 풍조로부터 자기 자신을 격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 풍조에 휩쓸려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일은 불가능하다. p. 146
사탄이 사람을 유혹할 때 즐겨 쓰는 세 가지 문장이 있다고 한다. '딱 한 번만이야, 두 번도 아니고 딱 한 번이라니까!?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시는 안 해도 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하는 거야!' p. 146
크리스천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 가운데 빌립보서 4장 13절이 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구절을 좋아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은 참 드물다. 그러나 바로 그 앞 구절인 12절을 알고 있는 사람 또한 극히 드물다. 12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게 무슨 말인가? 모든 물질적 욕망을 버리고 그 욕망을 뛰어넘었더니 그제야 주님의 능력 속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앞구절은 듣지 않고 뒷구절만 붙잡고서는, 거기에 자기의 욕망을 더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기를 쓰곤 한다. p. 151
14. 크리스천과 용기
믿음이란 분위기나 시대 조류에 휩쓸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다 휩쓸려도 깨어 있어야 믿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용기 없이는 불가능하다.p. 156
15. 크리스천과 효도
부모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도 행치 않으면서, 자기 자식만 좋아라 여기는 젊은이들은 정말 보기에 민망스럽다. 그것은 자기 자식에게 불효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p. 173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자기 자식에 대한 가장 확실한 가정 교육이다. 그렇기에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야말로 곧 자기 생명을 귀중하게 가꾸는 일이다. p. 174
부모가 이 땅을 먼저 살면서 미리 경험했던 인생의 무게와 가치를, 부모가 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야 인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 그 인생의 무게를 존중하고 그 무게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지혜다. p. 175
16. 크리스천과 선택
"사람이 바른 선택을 하려면, 선택하려는 그 하나만을 볼 것이 아니라 선택에서 제외되는 나머지를 살펴야 한다.”p. 180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 동기가 주님일 때 주님께서는 반드시 그 결과를 책임지신다.p. 186
주님께서 친히 짝지어 주셨음을 믿고서 결혼했다면, 그 선택에 대한 소명의식을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상대를 도구 삼아 주님께서 자신을 훈련시키시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된다는 뜻이다. p. 187
17. 크리스천과 경건
연습하라는 말은 훈련하라는 뜻이다. 경건은 훈련하지 아니하면 결코 이룰 수가 없다.p. 191
경건이란 훈련의 결과요. 반복의 열매이다. 이와 같은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 지금 그대는 하루에 얼마만큼의 시간(time)과 어느 정도의 힘(energy)을 쏟고 있는가? 통계학에 '엥겔계수'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한 가정이나 사회 또는 국가의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전체 생계비 지출 총액에서 음식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따라서 엥겔계수가 높을수록 후진국에 속한다. 말하자면 자기 소득 중에서 먹는 것에 쓰는 비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후진국에 가깝다. 반대로 그 비율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p. 192
그대 청년들이 정말 이 땅에 살면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도구가 되길 원하고 또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그대들은 반드시 경건한 자가 되어야 한다. 예배당 안에서는 물론이요 삶의 현장에서도 경건해야 한다. p. 194
18. 크리스천과 은혜
하나님의 마음을 얻지 아니하면 인간의 마음은 부드러움과 너그러움을 가질 수가 없다. 신앙인이 반드시 지녀야 할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부드러운 마음과 너그러운 마음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은혜를 받은 자만이 가능하다. p. 209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절대적인 기쁨, 영적인 기쁨이 있을 때, 그것은 인간의 모든 한계 상황을 초월하는 창조적인 힘이 된다. 그것이 바로 은혜이다. p. 211
은혜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주신 은혜를 갈무리하는 것은 그대들의 책임이다. 이미 주신 은혜를 힘입어 날마다 변화되어 가는 삶으로 주님을 위해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주님께서는 날로 더 큰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신다. p. 215
19. 크리스천과 영감
산업은 인생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 길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정치는 우리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할지 바른 삶의 길을 보여 주지 못한다. 모두들 경제와 기술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인간이 진정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만큼은, 사람들은 영감에 찬 종교인에게 묻고 있다. 기술 개발은 우리의 배는 부르게 할 수 있지만, 정작 우리 앞에 가로막혀 있는 존재적인 장애물을 제거해 주지는 못한다. 모든 존재적인 장애물은, 오직 하나님의 영감에 차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이 비로소 해체될 수 있는 것이다. p. 221
20. 새 역사의 막은 언제 오르나
공직 사회의 부패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새삼스레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공직 사회만 부패한 것이 아니다. 민간 기업은 어떤 의미에서 공직 사회보다 더 부패해 있다. p. 231
결말을 보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의 결과를 자신이 직접 얻으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새 역사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유혹을 버려야 한다. p. 241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영원 속에서 일하는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필요에 의하여 한 시대의 역할을 맡겨 주실 뿐이다. 따라서 내가 행하는 일의 결말을 보려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게 된다. p. 241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모세의 사명은 가나안 언저리까지였다. 그는 요단강을 건널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출애굽을 이끈 지도자라는 이유만으로 가나안이라는 결말까지 보려 했다면, 그는 가나안 언저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파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는 심되 열매를 거두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고 했다. p. 242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준비된 사람들이 돼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결코 이 시대만을 위하여 그대들을 부르신 것이 아니다. 이 나라의 100년 후 200년 후의 장래가, 오늘 그대들이 어떤 씨를 뿌리고 어떤 삶을 추구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 p. 242